(정치)순서따라 ‘천당과 지옥’ 오간다..사전투표함 개봉 왜 다를까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와 캠프 관계자들이 2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마라톤빌딩에 마련된 선거사무소에서 김동연 후보의 당선 확실이 나온 개표방송을 보고 있다. 투표함 개봉 순서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뉴스1]

이번 지방선거에선 투표함 개봉 순서에 따라 후보들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경우가 많았다. 통상 야당 지지자의 사전 투표 성향이 높아, 사전투표함 개봉 시기에 따라 여야 간의 실시간 득표율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0.14%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갈린 경기지사 선거다.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높은 의정부와 안양, 부천 등의 사전투표함이 늦게 열렸고, 김동연 후보는 2일 오전 5시 32분에야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에게 앞섰다. 반대로 사전투표함이 빨리 열린 서울 기초자치단체장 선거는 야당 후보들이 앞서나가다가 여당 후보에게 따라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이기면 짜릿하지만, 패배한 후보의 지지자에겐 ‘희망 고문’이 되는 사전투표함의 개봉 시기는 어떻게 결정될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특별한 지침이 없어 선관위마다 다르다”고 답했다.

대선만 코로나19로 사전투표 먼저 열어

3개월 전 대선을 기억하는 유권자라면, 중앙선관위의 답변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지난 대선에선 전국에서 관내 사전투표함을 일괄적으로 먼저 개봉해 개표했기 때문이다. ‘관내 사전투표함’이란 유권자가 자신의 지역구에서 사전투표를 한 투표지를 모아놓은 투표함을 가리킨다. 관외의 경우 투표지가 봉투에 담겨 우편으로 개표소에 전달된다. 개봉 절차가 복잡해 주로 선거 막판에 개표한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1일 오후 선거사무원들이 제주 서귀포시 강창학종합경기장 내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대선에서 중앙선관위는 전국에 “관내 사전투표함부터 먼저 개봉해 개표하라”는 일괄 지침을 내렸다. 이 때문에 사전투표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대통령 선거 다음 날인 10일 0시 32분쯤에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역전했다. 이번 경기지사 선거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선관위는 이와 관련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고려한 특별조치였다”고 설명했다. 개표일 전 투표한 사전투표함을 먼저 열어, 그 개표 시간 동안 코로나19 확진자가 투표한 본투표지에 묻었을지 모르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날아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방역 당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2시간 정도면 날아간다고 했다”며 “워낙 개표 요원의 불안감이 컸었다”고 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폭발했던 당시가 예외적인 상황으로 선관위는 “그 때와 달리 평상시엔 별도의 투표함 개봉 순서 관련 규정은 없다”고 했다. 이번 지방선거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지 않아 별도 지침을 내리지 않았다. 선관위 관계자는 “지역마다 특성과 실무자들의 업무 성향이 달라 일괄적 지침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개표 절차, 실무자 판단 따라 제각각

개표는 투표일 당일 투표시간이 끝난 뒤 투표함을 개표소로 옮겨 시작된다. 이번 지방선거는 코로나19 확진자 투표가 끝난 1일 오후 7시 30분부터 시작됐다. 본투표일 투표함은 바로 개표소로, 사전투표함은 각 지역의 선관위 사무실에 봉인돼 있다가 개표소로 운반된다.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소가 지역에 여러 곳 있다 보니 선관위 사무실보다 개표소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며 “본투표함이 먼저 도착하면 본투표함부터 열게 된다”고 했다.

지난달 10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당선이 확정되자 국민의힘 당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사전투표소가 읍·면·동마다 하나씩이라 본투표함보다 투표함 내의 투표지가 더 많은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1차 투표지 분류의 시간이 오래 걸려, 투표지가 비교적 적은 투표소별 본투표함부터 개봉하는 선관위도 있다고 한다. 개표는 투표지 분류기를 거쳐 다시 직접 투표 요원이 집계한 뒤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1차 분류 작업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면 개표 시작 자체가 늦을 수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전체적으론 큰 차이가 없어도 개표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민원이 쏟아진다”며 “각 선관위 실무자의 판단과 상황에 따라 사전투표함부터 먼저 개봉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투표함별 개봉 시기에 대한 별도의 지침이 필요한 것 아니냔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마다 개표 순서가 달라 유권자가 느끼는 혼란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함 개봉 시기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면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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