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금리에 1년 농사 망칠까..대출 문턱 낮추는 은행들

시중은행의 대출 문턱이 다시 낮아지고 있다. 대출 금리를 내리고 대출 한도를 넓히고 있다. 전국 모든 은행이 공동으로 시행했던 전세대출 규제에도 균열이 생겼다. 대출 규제를 주도했던 금융당국의 입김이 줄어든 데다, 대출금리가 오르며 대출 수요가 줄어든 결과다.

우리은행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시행했던 전세대출 세 가지 규제를 모두 완화한 가운데 신한·하나은행도 이같은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은행권 전반이 전세자금 대출 문턱을 낮출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규제가 느슨해지고 있다. 각 은행은 지난해 10월부터 전세대출을 전셋값 증액 범위 내에서만 내주고, 전세대출 신청도 잔금 지급일 이전까지만 가능하도록 제한하는 데 합의했다. 여윳돈이 있는데도 전세대출을 받아 갭투자나 주식 투자 등에 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런 규제 대열에서 가장 먼저 이탈한 건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21일부터 전세 계약 갱신에 따른 대출 한도를 ‘전셋값 증액 범위 내’에서 ‘갱신 계약서상 전셋값의 80% 이내’로 변경했다. 대출 한도가 크게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전셋값 5억원에서 임대차보호법 상한선인 2500만원(5%) 오른 경우를 살펴보자. 종전에는 증액 범위인 2500만원만 대출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전셋값(5억2500만원)의 80%인 4억2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해진다. 다만 기존 전세대출 보유액은 대출한도에서 빼고 대출을 해준다.

전세대출 신청 기한도 잔금 지급일 이전에서, 잔금 지급일 또는 주민등록 전입일 중 빠른 날로부터 3개월 이내로 바뀐다. 이렇게 되면서 다른 곳에서 돈을 조달해 전셋값을 내고 입주한 뒤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크게 완화된 데다 이사 철도 다가오고 있어 전세대출 관련 규정을 완화했다”고 말했다.

은행 가계대출 증감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KB·신한·하나·NH농협은행 등도 전세대출 심사 규정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연합회에 전세대출 관련 규제를 풀어도 되는지 문의를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줄어들었던 신용대출 한도도 새해 들면서 다시 늘어났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5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다시 늘리기로 했다.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9월 금융당국 총량규제에 맞춰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5000만원 이하로 낮췄다.

대출 문턱이 낮아지며 우대금리도 빠르게 살아나고 있다. 우리은행은 연 0.2%포인트의 신규 대출 특별 우대금리를 신설했다. 5월 말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적용한다. 농협도 지난달 주담대와 전세대출 우대금리를 0.5%포인트 높였고, 신용대출 우대금리도 0.3% 올렸다. 국민은행도 지난 7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주담대 금리를 0.1~0.2%포인트 인하한다.

시중은행이 가계대출 문턱을 낮추는 건 대출영업이 부진한 탓도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2월 두 달 사이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6000억원 감소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14조3000억원 증가했다. 5대 시중은행(KB·신한·우리·하나·NH농협)만 놓고 보면 감소 폭이 더 크다. 이달 18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05조7056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조3473억원 줄었다.

주요 시중은행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 목표를 5% 수준으로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1·2월은 이사 수요 등이 줄어드는 비수기로 꼽히지만, 올해는 대출 감소 폭이 이례적으로 큰 편이다. 지난 2월에는 2017년 3월 이후 처음으로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잔액이 줄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1분기에 나간 대출은 한 해 동안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만큼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대출 영업이 부진한 만큼 향후 금리 인하 등의 경쟁이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출 수요가 줄어든 건 대출 금리 상승과 자산 시장 부진이 맞물린 결과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월 중 은행권의 가계대출 금리는 연 3.91%로 2014년 7월(연 3.93%)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담대 금리가 연 3.85%로 2013년 4월(연 3.86%)이후 가장 높았고, 신용대출 금리도 연 5.28%로 2014년 9월(연 5.29%)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선뜻 돈을 빌리기 망설여질 수준으로 금리가 높아졌다는 의미다. 키움증권 서영수 연구원은 이달 초 보고서에서 “국내 은행의 대출 금리 인상 폭이 차주의 대출 수요를 억제할 정도로 급격히 인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치솟는 예금은행 가계대출 금리.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하며 금융 당국의 대출 총량관리에도 여유가 생긴 것도 규제가 느슨해지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총량규제를 진행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올해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이 도입되면서 지난해만큼 총량 규제를 강하게 적용할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 공약했던 만큼, 새 정부 들어 총량규제 방식의 가계대출 규제도 폐지될 가능성도 있다. 공약대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높아지면 대출 증가세에 다시 속도가 붙을 수 있다.

전배근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움츠러든 가계대출을 늘리기 위한 전세대출 규제 완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대출규제 완화가 현실화될 경우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은 재차 상승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Add a Comment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