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논문 실린 기술 中이 베껴도..특허 못챙기는 서울대

# 서울대 공대 소속 모 교수는 2020년 중국에서 출시된 전자제품을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본인이 수년 전 논문으로 발표한 센서 관련 기술을 실제로 활용한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특허를 등록했다면 특허료를 지급받을 수 있을 터였지만 논문으로 발표했기 때문에 공개된 지식으로 간주돼 중국 측이 무료로 해당 기술을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울대에서 논문으로 발표한 산업 기술을 해외 기업이 ‘특허료’도 내지 않고 사용해서 제품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에서 특허 출원을 통해 기술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풍토 때문이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대학이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지식재산권 수호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 구성원이 특허 출원에 소극적인 가장 큰 원인은 대학원생 졸업 요건, 교수 평가 등의 평가 지표가 전부 논문 위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공대는 박사 학위 졸업을 위해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급 논문 1편 등 일정한 논문 실적을 채우도록 하고 있다. 반면 졸업 요건에 특허와 관련된 인센티브는 전무하다. 교수 평가 역시 저명한 학술지 논문 게재 등 논문 실적을 주로 평가한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A씨는 “교내 학회 논문의 경우 특허 등록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박사과정을 밟다 보면 자연스럽게 논문을 많이 쓰게 돼 졸업 때문에 굳이 특허 등록을 시도하지 않는다”며 “포트폴리오를 위해 시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졸업만 바라본다면 논문 실적만 채우면 된다”고 전했다.

반면 미국·중국 내 유수 대학은 전략적으로 특허를 출원해 특허 수입을 챙기고 있다. 미국 지식재산권소유자협회(IPO)와 국립발명가학회(NAI)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스탠퍼드대는 각각 383건, 229건의 실용특허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칭화대도 실용특허 155건을 챙겼다. 이는 서울대가 같은 기간 68건의 실용특허를 획득한 데 비해 3~5배가량 많은 규모다.

실용특허는 주로 산업 기술과 관련돼 있으며 미국 특허청(USPTO)에서 발급한다. 특허를 획득하면 향후 20년간 해당 상품, 공정, 기계, 합성물 등을 배타적으로 사용할 권리가 주어진다. 첨단 기술에 대한 상업적 권리를 보장하는 귀중한 자산인 셈이다.

서울대는 특허 취득 관련 예산도 부족한 편이다. 올해 서울대에서 특허 출원과 유지에 배정된 예산은 65억원이다. 이는 전체 예산 9410억5700만원 대비 0.69%에 불과하다.

특허 등록에는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의 비용이 수반된다. 특히 복잡한 발명일수록 등록비가 많이 든다. 이에 특허 획득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새로 특허 등록을 할 수 있는 마중물 예산을 넉넉히 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대 관계자는 “특허 관련 예산의 상당 부분은 특허 유지에 쓰이는 비용”이라며 “현재 매년 들어오는 특허료 수입이 특허 관련 비용보다 적어 예산을 적극적으로 배정하기 어렵고, 예산이 부족해 특허 출원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허료 수입은 학교와 특허 등록에 기여한 구성원에게 절반씩 배분된다.

특히 반도체 등 산업 현장에서 인력 미스매치가 심화되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는 평가다. 논문 위주의 구시대적 평가 기준 탓에 대학교육 현장이 점점 시장과 유리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국내 대학이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가치에 갇혀 논문 실적, 노벨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데 이는 19세기 대학에서 자리 잡은 시대착오적인 관념”이라며 “지금 이미 현장에서는 반도체·2차전지·바이오 분야가 메가 트렌드인데 대학이 그런 분야에서 제시할 혁신 기술이 하나도 없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서울대 공대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모아서 가르쳐도 기업 현장에서 정말 필요한 기술을 만들어내는 공부를 하는 게 아니다 보니 학위를 취득해도 이공계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형편”이라며 “기업은 일할 사람이 없으니 반도체학과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이런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문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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