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예람 중사 특검법’ 통과됐지만, 아버지는 기뻐하지 못했다

고 이예람 공군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씨는 특검을 통해 진실이 규명되고 딸의 명예가 회복될 때까지 수염을 깎지 않으려 한다. ⓒ시사IN 조남진

“아빠는 마음이 기쁘지가 않다.” ‘이예람 중사 특검법’이 통과되던 순간 이 중사의 아버지가 딸에게 건넨 말이다. 4월15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군 20전투비행단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관련 군 내 성폭력 및 2차 피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특검법)’이 통과됐다. 이 중사가 사망한 지 330일이 지난 뒤였다.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씨는 특검법 통과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마음을 졸였다. 딸의 명예를 회복하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선 특검 수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검법이 통과돼 다행스러웠지만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딸을 살릴 수 있었던 ‘81일’이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이하 20비)에서 근무하던 이예람 중사는 지난해 3월2일 같은 부대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다음 날 곧바로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군은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았다. 이 중사는 성추행 피해 뒤 81일 동안 사건 은폐 협박, 2차 가해 등에 시달리다 지난해 5월21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시사IN〉 제718호 “군 성폭력, ‘부대 내’ 전담팀으로는 해결 못한다” 기사 참조).

이 중사가 왜 죽음으로 내몰려야 했을까, 이주완씨는 딸의 81일을 쫓았다. 군은 강제추행 가해자를 수사할 의지가 없었다. 20비 군사경찰은 가해자 조사도 하기 전 ‘불구속’ 방침을 결정하고 압수수색 영장도 신청하지 않았다. 20비 군검사는 사건을 맡은 지난해 4월7일부터 5월21일 이 중사 사망 전까지 가해자 조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동안 이 중사는 고립돼 있었다. 〈시사IN〉은 이 중사가 사망하기 사흘 전인 5월18일에 받았던 면접상담 기록지를 입수했다. 이 중사는 성추행 피해 뒤 ‘우울, 불안, 공포, 죄의식, 분노, 불면, 남성혐오, 자살충동, 살인충동, 자신감 상실, 해리’ 등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이 중사가 사망 사흘 전까지도 제도적으로 가장 받고 싶었던 도움은 ‘가해자에 대한 법적조치 강화’였다.

군은 이 중사 사망 이후 5월31일 언론을 통해 사건이 공론화되고 나서야 신속하게 움직였다. 사건은 20비에서 공군본부 검찰부로, 국방부 검찰단으로 이첩됐다. 창군 이래 처음으로 특임 군검사도 임명됐다. 국방부는 공군본부로부터 사건을 이관받아 지난해 6월1일부터 진행한 수사를 지난해 10월7일 종료했다. 수사 결과 사망사건 관계자 중 총 25명이 입건됐다. 그중 15명이 기소, 10명이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초동수사를 맡은 20비 군사경찰과 군검사를 포함해 군검찰을 지휘·감독하는 공군본부 법무실 지휘부는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됐다.

이 중사의 아버지는 최종 수사 결과를 보고 더 이상 군을 믿을 수 없었다. “초동수사 부실하게 한 사람들, 부실 수사를 덮어준 책임자들이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군은 폐쇄성이 강하다. 군사재판에 가보면 군판사, 군검사, 가해자 변호사가 다 한편이다.” 남은 수단은 특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 중사의 아버지는 특검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야 4당의 특검법 발의, 여당의 비협조

“부실 수사를 다시 부실 수사한 국방부, 국회는 특검을 도입해야 합니다!” 국방부가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지 10여 일 지난 2021년 10월20일 국방부 앞에 시민분향소를 꾸리고 특검법 도입 요구를 알렸다. 같은 해 11월1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면서 무기한 1인 시위에 나섰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군을 대상으로 하는 특검은 지금껏 없었다. 지난해 6월10일 야 4당(국민의힘·정의당·국민의당·기본소득당)이 일찍이 특검법을 발의했지만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지난해 11월18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아직 (당내) 입장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여당의 비협조로 특검법 통과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20대 대선 정국에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2월25일 대선후보 TV 토론회에 출연한 심상정 당시 정의당 후보는 마지막 1분을 ‘이예람 중사 특검 도입’을 요청하는 유족의 이야기로 채웠다. 이주완씨는 이날을 “심상정 의원이 어둠 속에 있는 예람이를 건져서 국민들 앞에 보여준 날”이라고 기억한다.

닷새 후 열린 3월2일 TV 토론회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가 특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심 후보에게 “찬성한다”라고 답하며 속도가 빨라졌다. 이튿날 이주완씨는 이재명 후보와 직접 통화하면서 특검법 발의를 요청했다. 이 후보는 당에 특검법 추진을 요구했고 3월4일 민주당은 특검법을 발의했다(김용민 의원 대표 발의). 김용민 의원실 관계자는 “당론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논의가 늦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로 법안을 냈다. 그만큼 속도가 빨랐다”라고 말했다.

군을 대상으로 하는 특검은 대한민국 최초다. 이번 특검은 ‘이 중사 사망사건과 연관된 공군 내 성폭력, 2차 가해 등 불법행위’를 수사하게 된다. 국방부와 공군본부 내 사건 은폐·무마·회유 등도 수사 대상이다. 수사 과정에서 새로 인지된 사건도 수사 대상에 포함됐다. ‘이 중사 특검’에 주어진 시간은 최대 100일(준비기간 만료 후 70일 이내·30일 연장 가능)이다. 이주완씨는 특검이 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부실 수사 책임자들을 먼저 수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군이 처음부터 강제추행 수사를 제대로 했다면 예람이가 지금 살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국방부 수사에서 책임자들이 다 빠져나갔다. 이제부터 수사관, 법무실장, 검사, 경찰단장 이렇게 제일 중요한 사람들을 수사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3월31일 발표한 ‘군대 내 성폭력에 의한 생명권 침해 직권조사’의 결정문을 보면, 공군은 일찍이 성추행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20비 검찰수사관은 사건 접수 초기인 2021년 3월8일 군사경찰대 수사계장에게 받은 ‘정보통신대대 중사 군인 등 강제추행’ 개요를 공군 수사관 30명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20비 군검사도 이 중사 사망 전 4월16일 이 중사의 자살 시도, 2차 가해자로 지목된 노 아무개 상사의 합의 종용 등을 알고 있었다.

가장 먼저 수사 대상으로 지목되는 이들은 초동수사를 맡았던 20비 군사경찰과 20비 군검사다. 이주완씨는 “누가 (가해자) 불구속 수사, 부실 수사에 관여되어 있는지, 군검사를 지휘했던 공군본부 법무실이 연루되어 있지는 않은지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제추행 가해자인 장 중사가 구속된 건 지난해 6월1일 국민청원이 올라가고 사건이 국방부 검찰단으로 이첩된 직후다. 지난해 6월2일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장 중사에 대해 군인등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4월15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예람 중사 특검법’이 통과되자 아버지 이주완씨(가운데)가 방청석에서 눈물을 흘렸다. ⓒ시사IN 조남진

이씨는 아직 딸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이 중사는 지금도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냉동고에 안치돼 있다. 딸의 사망 이후 이주완씨는 빈소 한쪽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장기이식수술 환자인 이씨의 잠자리엔 약 봉투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이씨는 수염도 자르지 않고 있다. 부검 후 마주한 딸의 모습을 보며 딸에게 약속한 일이다. 특검을 통해 진실이 규명되고, 딸의 명예가 회복될 때 면도를 할 계획이다. 딸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외치면서 요구가 몇 가지 더 늘었다. 이 중사 사건 외에도 은폐된 군 내 폭력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 중사 사건을 통해 드러난 군 내 허점을 바로잡는 일이다.

이씨는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머물며 장례식장을 찾는 또 다른 유가족을 마주했다. 그중 공군 제8전투비행단 소속 ㄱ 하사 유가족이 있었다. ㄱ 하사는 이예람 중사가 사망하기 열흘 전인 지난해 5월11일 사망했다. 가해자는 5월21일 ㄱ 하사를 강제추행했다고 진술했다(〈시사IN〉 제749호 ‘공군 하사의 죽음 그 후 8개월, 진실을 찾아 나선 부모’ 기사 참조 https://www.sisain.co.kr/46639). 이씨는 ㄱ 하사의 아버지를 만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입대한 아이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죽을 각오로 했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왔다. 도움받은 만큼 할 일이 있다면 하고, 깨끗하게 수염을 깎으려고 한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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