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가 찬미한 최고의 생선.. 고고한 ‘어른의 맛’ 입안에 스미네

[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복어

서울 마포 ‘부영각’의 부추복어살./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복어에는 어른의 맛이 있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가면 새끼 복어가 그렇게도 많이 잡혔다. 배에 바람을 넣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복어를 보노라면 그 맛이 늘 궁금했다.

미식가가 최고로 치는 맛이 복어라는 말도 있다. 어떤 식재료가 다른 식재료를 압도하는 맛이 있다든가, 혹은 우월하다고 믿지는 않는다. 사람의 취향과 미각이라는 것은 문화에 따라 다르고 개인차가 크다. 그럼에도 복어에 남다른 아우라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중국의 소동파, 일본의 로산진이 찬미했던 식재료. 살면서 흔하게 접하진 못했다. 하지만 먹을 때마다 ‘아 복어구나’라는 흔적을 꼭 남겼다.

그 자국을 좇아가다 보면 부산 ‘초원복국’에 먼저 이르게 된다. 초원복국이란 이름을 전 국민이 알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이 집은 여전히 사람이 넘친다. 어릴 적 TV에서 이 집 이름을 봤을 때 궁궐 같은 요릿집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들어 찾아가니 우아하게 나이가 든 신사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단정한 집이었다. 복지리(맑은탕) 하나를 시켜도 꼭 냄비에 따로 끓여 손님 앞에서 대접에 옮겨 담아주는 방식도 그렇다.

매콤한 콩나물 무침을 반찬으로 곁들이며 맑게 끓인 복지리를 앞에 두면 새벽녘 햇살을 본 것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기름기 하나 없는 국물은 다른 생선, 혹은 육고기 국물과 결이 달랐다. 미나리와 콩나물이 한바탕 뒤엉켜 일으킨 국물은 안개 낀 해풍처럼 위장 결을 따라 잔잔히 스며들었다. 반 그릇 정도 먹다가 옆자리 어르신처럼 식초를 한 두어 바퀴 두르는 게 또 방법이었다. 막혔던 코가 뚫리고 텁텁한 입맛에 개운한 맛이 돌면서 정신이 들었다. 점심나절 왁자지껄 수다가 펼쳐지는 방에서 혼자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 짠 바다 냄새가 몸에 와 닿았다.

서울 합정에 가면 ‘퓨전 선술집’이라는 곳이 있다. 이름만 봐서는 그저 그런 술집 같다. 안에 들어가면 자객 같은 눈빛을 한 주인장이 긴 칼을 들고 손님을 맞는다. 호텔에서 오래 수련한 주인장이 내놓는 회들은 그때그때 시세에 따라 값을 매긴다. 시가라는 말이 제일 무섭지만 내놓는 음식을 보면 불만이 사라진다. 자리에 앉으면 초생강과 함께 무조림이 나온다. 참치 뼈 등을 넣고 이틀간 졸인다는 무조림은 이 집 대표 메뉴 중 하나다. 따로 돈을 받지 않는 반찬 격이지만 큼지막한 무의 세포 사이사이까지 스며든 간간한 맛은 무의 단맛과 하나가 되어 웬만한 요리를 뛰어넘는 맛이 난다.

회는 숙성을 거쳐 혀에 닿는 감칠맛은 증폭되어 있고 쫀득한 찰기 역시 여전했다. 이 집에 와서 술 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만큼 힘들다. 마치 마티니에 중독된 제임스 본드처럼, 주방 앞 작은 의자에 앉으면 복어 지느러미를 띄운 히레사케를 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히레사케는 중탕으로 뜨겁게 달군 청주를 잔에 담아 말린 복어 지느러미를 꽂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낸다. 파란 불꽃이 살아 있던 그 잔을 받았을 때 지워지지 않는 강한 향이 코를 찔렀다. 이 한 잔에는 농축된 바다 내음이 녹아 있었다. 그 맛은 비리지 않았고 대신 겨울이 지나 봄에 불어오는 해풍처럼 따스하고 화사한 향을 품었다. 복어의 향이 우러난 사케는 아예 다른 술이 돼 있었다. 주인장이 직접 복어 지느러미를 말리기에 파는 양이 많지 않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서울 마포 용강동에 가면 ‘부영각’이란 오래된 중국집이 있다. 1972년 문 연 이 집은 마포 먹자골목에서 한참 먼 조용한 골목 어귀에 자리 잡았다. 가게에 들어가면 들뜨지 않고 단정한 기운이 느껴진다. 요리 하나를 시켜도 손님 숫자대로 작은 접시에 나눠 냈다. 요리가 여럿이면 나름의 순서를 정해 손님 먹는 속도에 맞춰 차례로 냈다.

가볍게 소스를 묻혀 내는 탕수육은 튀김옷이 딱딱하거나 거칠어 입 천장을 해치지 않았다. 폭신하고 부드럽게 이에 얽히는 튀김옷과 단맛과 신맛이 동글동글 어울린 소스에 “예전에 먹던 맛이다”라는 말이 나왔다. 주방에서 뜨거운 김을 내며 나온 쟁반짜장은 부드러운 면과 소스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 빨려 들어가듯 목구멍을 넘어갔다.

대표 메뉴 부추복어살은 하얀색에 가까운 튀김과 푸릇한 부추가 오래된 산자락처럼 얌전히 상 위에 내려앉았다.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는 부추는 옛 선비의 붓처럼 고고한 맛과 기세가 있었다. 담백한 복어살을 튀겨 부추와 같이 볶아낸 이 요리는 단순했지만 그 이상이 필요하지 않았다. 시 한 줄에 인생을 걸던 옛사람이 탐하던 복어의 맛은 소박하여 아름다웠다. 세월에 닳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어른의 맛이었다.

#초원복국: 은복지리 1만2000원, 밀복지리 1만9000원. (051)628-3935

#퓨전선술집: 숙성회 시가, 히레사케 7000원. (02)335-4764

#부영각: 부추복어살 3만원(소), 탕수육 1만8000원(소), 쟁반짜장 9000원. (02)716-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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