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잡히는 물가, 짙어지는 R의 공포..고민 깊어지는 파월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인플레이션 쇼크가 이른바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로 번지고 있다.

약간의 고통으로 인플레이션을 잡는 ‘연착륙’이 가능하다고 밝힌 연방준비제도(Fed)와 달리, 경제학자 10명 중 7명은 미국 경제가 내년 중 침체 국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수의 월가 투자은행 역시 경기침체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비관했다. 물가 안정 숙제를 맡은 제롬 파월 Fed 의장으로선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리스크 사이에서 ‘암울한 계산’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경제학자 68% “내년 美 경기침체”…선택의 늪 빠진 파월

12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대학 부스경영대학원 IGM 등이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2023년 중 미국의 경기침체를 예상한 경제학자는 전체 응답자의 68%를 차지했다. 구체적으로 2023년 상반기가 38%, 하반기가 30%다. 2024년 상반기는 9%, 하반기는 21%로 집계됐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41년 만에 최고치인 8.6% 상승하며 Fed의 긴축 우려가 높아진 가운데 공개됐다. Fed의 전망과 달리,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특히 이들 중 40%는 Fed가 현재 1%인 기준금리를 2.8%까지 높이더라도 인플레이션 통제가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알리안츠 경제 고문인 모하메드 엘에리언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더 나빠져 9%에 도달할 수 있다”며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결국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인플레이션이 고공행진하며 미국이 경기침체를 피할 수 있는 길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Fed로선 사실상 대안이 없는 ‘홉슨의 선택’에 점점 가까워지는 모양새다.

경기침체 우려를 한층 가열시킨 것은 오는 14~15일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발표된 인플레이션 지표다. 월가에서는 당초 시장에서 기대해 온 ‘인플레이션 정점론’이 5월 CPI 발표로 물거품이 되면서 향후 Fed의 대응이 공격적 기조를 띨 수밖에 없을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블룸버그통신은 “급등하는 인플레이션이 Fed에 더 많은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인플레이션 통제를 위해 경기를 침체에 빠뜨려야 하는, 암울한 계산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무디스애널리틱스는 지난달 말 보고서를 통해 “Fed가 충분히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내년에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며 “Fed가 홉슨의 선택에 직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홉슨의 선택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당장 이달 FOMC에서는 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이른바 ‘빅스텝’ 가능성이 크다. 인상폭 기준으로는 기존에 예고된 것과 동일한 수준이다. 다만 관건은 7월 이후 긴축에 대한 힌트다. 시장에서는 파월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7월 빅스텝을 시사할지, 한번에 금리를 0.75%포인트 높이는 ‘자이언트스텝’ 가능성을 열어둘지 등을 주시하고 있다. 함께 공개되는 점도표상 금리 인상 경로와 장기금리의 변화 여부도 관심사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은 6월 0.75%포인트 금리 인상 가능성을 30%, 0.2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70.0% 반영하고 있다.

◇거세지는 경기침체 논쟁

결국 Fed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과감한 긴축을 택할 경우 1980년대처럼 경기침체, 실업률 상승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쏟아진다. 그간 ‘연착륙’을 강조해온 Fed와 달리 골드만삭스, 도이체방크 등 월가 투자은행들은 이미 경기침체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해왔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학 교수는 이날 CNN에 출연해 향후 1~2년 내 미국이 경기침체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머스 교수는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한층 과감한 통화 긴축을 주문해 온 인물이다. 그는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도 “Fed가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JP모건체이스의 브루스 카스맨 역시 “Fed가 인플레이션 안정에 무게를 두면 결국 경기침체를 피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미 미 경제에서 경기 하강 조짐이 하나둘 확인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CNN은 Fed의 금리 인상, 증시와 채권의 동시 급락,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 우크라이나 사태 등을 비롯한 글로벌 리스크 등을 언급하며 미 경제가 둔화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경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소비 심리가 나빠지고 있다는 점도 우려점으로 꼽힌다. 앞서 공개된 6월 미시간대소비자태도지수 예비치는 50.2로 1978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전 Fed 의장인 벤 버냉키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Fed가 경기침체를 피할 여지가 있다고 바라봤다. 그는 강한 고용지표 등을 언급하며 공급 측 압력을 개선할 경우 Fed의 말대로 연착륙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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