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탈출한 고양이 ‘윤기’, 3주 만에 집으로…"다들 고맙다옹"[인류애 …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세상과 사람이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반대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구석구석 다니며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좋은 일들도 선한 이들도 많다고 말이지요. 힘들어 무너질 것 같은 날에 이리로 와서 쉬세요. 쪼그라 들었던 좋은 마음을 꺼내어 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우크라이나서 전쟁 피해 고양이와 피난 왔는데, 검역당국서 검역증 없다며 ‘입국 불허’, 안락사 위기 소식에 더 많이 화내고 민원 넣어준 사람들…도움 덕분에 국내 검역 가능해져, 윤기 아빠무섭고 답답하고 화났었는데, 많은 분들 덕분에 윤기가 집으로…정말 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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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부터 인천공항 계류장서 3주간 갇혀 있다가, 26일 부산에 있는 집으로 온 고양이 ‘윤기’. 이동장서 나와 첫 발을 내딛던 순간. 눈이 휘둥그레, 윤기둥절, 처음엔 낯선 집에 적응이 필요한 모습이었단다./사진=윤기 보호자가 운영하는 ‘모지리 in 우크라이나’ 유튜브 채널, 영상 화면 캡쳐

철창 사이에서 동그란 큰 눈을 뜨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았다. 당시 인천국제공항 영종도 계류장에 갇힌 고양이 ‘윤기’의 표정이 그랬다. 윤기는 아빠(보호자)와 함께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탈출했다. 그리고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거쳐 지난 5일 어렵사리 한국에 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윤기는 입국이 안 된다고 했다. ‘검역증’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전쟁이 한창인 나라에서, 사람과 동물이 포격으로 숨지는 와중에 ‘검역증’을 받아오란 게 웬말인가. 그러나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윤기를 계류장에 묶어둔 채 입국은 안 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인접국인 폴란드 등 다른 유럽 나라 모두 ‘예외 상황’을 인정해, 함께간 동물 가족을 들여보냈는데도. 심지어 주우크라이나 한국 대사관에서 “검역증을 발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공문까지 보내줬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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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처음 계류장에 갇혀 있을 당시 고양이 윤기가 아빠를 바라보는 모습.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사진=윤기 아빠

윤기 아빠는 홀로 입국한 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급박한 마음에 경북 김천에 있는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찾아갔지만 담당자는 “(검역증 없이 동물을 들여보내는 건) 규정에 없고,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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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윤기가 무려 3주 만에 계류장을 빠져나오던 날. 윤기 아빠는윤기가 두부라도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했다. 이제야 비로소 그럴만한 여유가 생긴 것도, 함께 목소릴 내어준 이들 덕분이었으리라./사진=윤기 아빠

그로부터 3주가 지난 26일, 윤기는 다행히 계류장에서 나왔다. 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윤기가 집에 가는 그날 오후, 서울역 인근 서울로에서 윤기 아빠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윤기는 실물이 훨씬 더 귀여웠고, 내 손에 네 발을 뻗어 계속 활발하게 장난을 쳤다. 표정도 좋아보였다. 이젠 아빠와 집에 가는 걸 다 아는 것처럼.

검역본부 찾아가도 입국 안 된다는 말만,너무 무섭고 갑갑하고 화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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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윤기가 인천국제공항 영종도 계류장에서 나오던 날. 부산에 있는 집으로 가기 전에, 윤기의 이동장을 잠깐 열어준 윤기 아빠. 윤기가 놀라지 않도록, 혹여나 튀어나가지 않도록 조심조심 눈을 맞추는 모습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형도 : 일단, 윤기 실제로 보니 너무 귀여워요(진심). 냐아옹 거리며 울고 장난도 치고, 좋아보여요. 눈 아픈 건 이제 괜찮나요?(계류장에 있을 때 눈병이 났었다)
윤기 아빠 : 일주일 정도 치료 받고 괜찮아졌어요. 계류장에 3주 있는 동안 애기 티가 많이 사라졌어요. 육안으로 보기엔 건강도 괜찮고요. 엄청 활발해보이지 않나요?(맞아요) 처음에 헤어질 때랑 눈빛이 완전 달라요. 이제 집에 간다는 걸 아나봐요.

형도 : 처음에 입국 안 된다는 걸 아셨을 땐 많이 힘드셨지요. 상상만해도 그래요.
윤기 아빠 : 너무 무섭고 갑갑하고 화가 나더라고요. 담당 공무원 마음도 이해하지만요. 결과적으로 보니까, 우리나라에도 예외 법령이 있었더라고요. ‘상대국 정부 기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땐, 검역본부장 역량으로 할 수 있다’고 돼 있는.

26일 오후 서울역 인근 서울로에서 인터뷰하는데, 내 손에 자꾸만 장난을 치는 윤기./사진=너무 귀여워서 취재에 집중하기 힘든 남형도 기자

형도 : 그럼 애초에 국내 법령으로도 가능했던 거군요?
윤기 아빠 : 그렇죠. 그런데 농림축산검역본부(김천)에 찾아갔을 땐, 담당자가 윗선에 보고도 안 했더라고요. 그게 너무 화났는데, 윤기한테 피해가 갈까봐 그냥 왔었어요.

심지어 국경없는 수의사회서 책임지고 검역을 해주겠단 말에도, 검역본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윤기 아빠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런 걸 예상했다면 한국에 안 들어왔을 거라고 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도움을 호소하는 영상을 올렸다.

‘안락사’ 위험도 있단 말에…진심으로 대신 화내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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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가 국내 입국을 못하게 된 뒤, 윤기 아빠는 지난 9일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다. 윤기를 가장 먼저 지킨 건 누가 뭐래도 아빠였다./사진=윤기 아빠 유튜브, 모지리 in 우크라이나

형도 : 영상 올리신 다음에 공분이 커졌었지요?
윤기 아빠 : 맞아요. 특히 고양이를 70여 마리 키우시는 ‘섭섭러브(유튜브 닉네임)’란 분이 정말 큰 도움을 주셨어요. 사실 전 어디에 도움을 요청할지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그 분이 여러 동물보호단체, 국경없는수의사회, 검역소, 각종 기관에 전화해서 도움 주셨지요.

윤기 아빠가 올린 영상의 댓글을 봤다. 사람들은 “진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당장 가족 품에 돌려보내라”대신 화를 내었다.윤기가 눈물이 그렁그렁해 맘 아프다”공감(共感)이 번졌다. 후원이 필요하면 얼마든 하겠다”도움의 손길도 넘쳐났다. 방법을 꼭 찾겠다고,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했다.

전쟁통을 뚫고 살아왔는데 아빠와 떨어진 윤기를 위해서, 생전 처음 보는 고양이임에도 말이다. 누군가는 언론사에 제보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카페와 SNS에 올리고 연대에 나섰다. 나 역시 독자의 제보를 받아 알게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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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윤기가 입국을 못하게 됐다며 올린 유튜브 영상에 남겨진 댓글들. 대신 화내주고, 울컥하고, 응원하고. 복잡한 세상이어도, 내 일 아니면 남 일이어도, 기꺼이 함께하려는 이들 덕분에 세상이 또 돌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사진=윤기 아빠 유튜브, 모지리 in 우크라이나

형도 : 그리고 동물보호단체에서 함께 나선 거고요.
윤기 아빠 : 처음 나서준 건 ‘나비야사랑해’였어요. 이어 ‘케어’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셔서 안심을 시켜줬어요. 법령이 있지만 예외 규정으로 입국할 수 있다고, 네 개의 나라 사례를 보내주셨지요. 특히 케어가 “검역을 통과하지 못한 동물들이 안락사될 수 있다”고 SNS 등에 글을 올려주신 뒤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어요. ‘동물자유연대’에서도 목소릴 내고, 검역본부와의 회의에 들어가주셨고요.

형도 : 연대의 힘이라는 게 느껴져요. 그게 효과가 있었던 거지요. 다행스럽게도요.
윤기 아빠 : 맞아요, 민원이 많이 들어가고 하니까 윗선까지 보고가 올라갔나봐요. ‘일주일만 기다려보자’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윤기가 국내에서 검역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들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니까, 달라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전쟁 속 방공호에서도 품었던 ‘윤기’…3주 만에 만나니 ‘두근두근’,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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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서울로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윤기와 윤기 아빠.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정말 보고 싶었다. 참 좋았다./사진=남형도 기자

많은 이들의 연대 덕분에 윤기는 국내에서 검역을 할 수 있게 됐다. 백신을 맞은 뒤 항체가 형성되면 입국할 수 있게 된 게다. 그러기 위해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이날(26일), 윤기 아빠는 윤기를 만나러 영종도에 오던 길에 ‘항체 형성 결과 통과입니다’란 문자를 받았다. 심장이 너무 두근거리고 기분이 좋았단다. 윤기를 데리고 나오는 순간엔 엄청 더 좋았다고. 이젠 헤어지지 않아도 되니까. 새삼 이런 걸 물었다.

형도 : 윤기는 아빠에게 어떤 고양이인가요?
윤기 아빠 : 올해 2월 5일에 우크라이나에서 처음 만났어요. 이상하게 꼬양이(고양이)를 키우고 싶더라고요. 전쟁이 난 뒤엔 다들 “고양이가 중요하냐, 네 목숨이 중하지”라며 이해를 잘 못했어요. 근데 윤기가 애기인데 어떻게 전쟁 지역에 두고 오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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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윤기가 아가였을 때 모습. 핑크 젤리가 네 개./사진=윤기 아빠

형도 : 아무렴요, 누가 뭐래도 가족인 걸요.
윤기 아빠 :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났을 때 겨울이라 추웠거든요. 저녁마다 방공호에 내려가고, 오후에도 사이렌 울리면 내려가고 했어요. 그때마다 윤기를 품에 안고 있었거든요. 안 도망가고 소변도 잘 참더라고요. 잘 때도 제 베개 옆에서 잤고요.

형도 : 그러니 한국서 윤기가 계류장에 있어야 해서, 3주나 떨어져 있는 시간이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윤기 아빠 : 매주 윤기를 보러 왔거든요. 두고 나올 때마다 너무 힘들었었어요. (계류장이 있는) 영종도에서 묵을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발걸음이 무겁고요. 저는 떨어져 있는 이유를 아는데 얘는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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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저녁 처음 만난 두 귀여운 녀석들. 부산에 있는 집에서 함께하게 된, 아직은 낯설지만 (곧 가까워질 예정인) 윤기(왼쪽)와 와치 삼촌(오른쪽)./사진=윤기 아빠 유튜브, 모지리 in 우크라이나

윤기는 인터뷰를 마친 뒤 부산에 있는 아빠 집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와치 삼촌(강아지, 11살)과 만났다. 소심한 와치 삼촌은 아직 윤기가 낯설어 피하지만 화내지 않고, 적극적인 윤기는 와치 삼촌을 졸졸졸 따라다니며 잘 지낸다고.

윤기 아빠는, 윤기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릴 내어준 이들에게 꼭 하고픈 말이 있다고 했다.

“혼자 힘으론 뭘 해도 움직여지지 않더라고요. 자기 일처럼 마음 아파하고, 대신해서 화내준 분들 덕분에 움직여진 거예요.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지 잘 모르겠어요. 심장이 약한 종이라 비행기를 다시 타고 나갔으면, 아파서 안 좋았을 수도 있고요. 정말 진짜로, 너무 고맙습니다.”

맺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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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 아빠 팔목에 새겨진 타투. 윤기와 밀(우크라이나의 상징), 그리고 글귀./사진=윤기아빠 인스타그램.

윤기라는 이름은, BTS 슈가의 본명(민윤기)에서 가져온 거라고 합니다. 우크라이나에 있을 때, 여자친구가 BTS 팬이라서 붙여준 거라고요. 윤기 아빠는, 윤기와 잠깐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합니다. 전쟁을 목격한 터라, 한국에선 도시가 평화로운데도 불안함이 여전히 있다고요. 그의 팔목엔 윤기 모습과 함께 이런 글귀가 타투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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