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지자체는 어떻게 ‘그들만의 왕국’이 됐나

[경향신문]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 선거운동이 시작된 5월 31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담장에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선거 벽보를 부착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보통은 황제 밑 재상·승상에게 쓰는 표현이다.

대한민국과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총리에게 따라붙는 성어다. 그런데 대한민국엔 또 있다. 지자체장이다.

“직접 가까이서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인 설명이다.

기자가 접촉해본 사람 중 ‘제왕적 권력’이라는 부정적 수식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행 정치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견제나 감시는 사실상 불가능”이라는 비관적 견해를 제시한 이조차 있었다.

“결국 인사권과 경제권이지 않겠나.”

경기도 고양시에서 재선 시의원을 역임한 심온씨(개명 전 이름 심규헌)의 말이다.

“고양시의 경우 조직원이 3000여명이다. 아무리 작은 지자체라도 최소한 몇백명의 공무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을 자기 입맛에 맞게 인사권을 쥐고 일을 시킬 수 있다. 다음 큰 이유가 몇천억씩 되는 경제권이다. 잘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모르고 지나가는 영역이지만 해본 사람은 그게 엄청 큰일이라는 걸 안다.”

“왜 정치권이나 공무원들이 지자체장을 하고 싶어할까”라는 원초적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공명심이나 명예욕도 물론 작용할 수 있다. 지자체장이 되면 그 외에 개인적 이득은 없는 것일까를 물었다.

■왜 지자체장이 되고 싶을까

심 전 의원이 시의원에 재선할 수 있었을 때는 2006년 기초단체 의원 선거에 정당공천이 도입되기 전이었다.

지역 시민운동 출신 인사였던 그는 자치 후보라는 이름으로 시의원에 도전했다. 정당공천제 도입에는 반대했다.

시정 활동보다는 간판, 다시 말해 어느 당 후보로 출마했느냐를 두고 ‘줄투표’가 벌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전국 지자체 의원들과 함께 ‘시민자치를 위한 젊은 일꾼’이라는 연대체를 조직하고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그 이후 10년이 넘게 흘렀다. 기초단체 의원의 정당공천제는 굳건하다.

그는 여전히 당시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같이 자치분권운동을 하던 이들은?

“여전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다 뿔뿔이 흩어졌다. 이 당이든 저 당이든 간판을 달지 않고서는 현실적으로 당선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지난 지자체장 선거에서 수도권 대도시 경선에 도전했던 정치권 인사 A씨는 “지자체장은 쉽게 말해 각 동네의 ‘김일성’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장관이나 시장을 ‘오너’라고 부른다. 사실 오너의 측근들이 더 무섭다. ‘저 XX 지방으로 보내’라고 하면 가는 거지. 그것보다 더 센 게 광역이다. 왕이다 왕. 이전에 지역에서 지사를 하는 정치권 선배를 만나러 간 적이 있는데 향토방위협의회라는 게 있다. 거기에 그 지역에서 제일 높은 군 인사가 왔는데 ‘쓰리스타’였다. 군 측 참가자의 수행원들이 대령급이었다. 말하자면 지역에서 최고사령관도 도지사한테는 ‘꼼짝 마’였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알 거다. ‘원스타’만 봐도 지리는데 투스타가 도지사한테 절절매더라.”

그는 권한에서 단체장이 어떤 의미에서는 장관보다 더 낫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도시의 경우 직접 거느리는 직원이 1000여명이 넘는다. 중앙부처 장관이 직속으로 데리고 있는 직원은 고작해야 400명 남짓이다. 게다가 부처의 경우 절반이 행시 출신 사무관이다. 지방자치단체에 가면 사무관은 기껏해야 열댓명이다. 1000여명을 데리고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파워다. 쉽게 1000명 직원을 둔 기업을 생각하면 된다. 200명 직원을 둔 기업의 CEO도 거의 왕급인데, 1000명의 인사와 예산을 내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해보라.”

그는 제왕적 권력의 힘은 ‘의전의 확장’에서 나온다고 덧붙였다.

“급수가 같다고 비서실 등급도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정당의 유력인사 차량을 운전하던 수행역이 현재 모 지자체에서 도의원을 하고 있다. 비서실 등급이 다르니 밥 얻어먹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비즈니스로 보면 사업체에서 갑과 을은 있을 수밖에 없고, 비서실 직원들이 구청장 일을 뛰는 것도 의전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짱(長)’들이 8급이나 7급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다. 하급 공무원의 경우 보좌관들한테 잘 보여야 시장실에서 차라도 한잔 마실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는 승진에 목을 매는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조력이 없다면 제왕적 권력도 성립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거꾸로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직급별로 4년은 묵어야 승진 심사대상이 된다. 이게 10년도 될 수 있다. 흔히 모든 공무원의 꿈이 예산 늘어나는 것과 승진인데, 내가 6급 달고 5년을 개길 거냐 10년을 개길 거냐를 결정하는 게 시장이다. 지자체장이 교체되면 5년 만에 고위직을 단 공무원들 주변을 검찰이 유심히 들여다본다. 전 단체장의 비리와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감시와 견제 벗어난 제왕적 권력

또 하나가 있다. 돈. 서울시 구청장 출마 경험이 있는 B씨의 말이다.

“국회의원선거보다 지자체장 선거가 돈이 더 많이 든다. 서울시의 경우 구청장은 한명인데 의원은 세명, 네명인 경우도 있다. 휴대전화 메시지 하나 보내는데도 건당 200만원이다. 예전에 정치권 한 선배에게서 들은 말이다. 4년 동안 4억원 쓰나 6개월 동안 4억원 쓰나 똑같다. 조직을 관리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이익집단과의 결탁은 당을 떠나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뜻을 같이하는) 시민단체라도 있어야 쓰레기봉투라도 쥐어주고 동네 청소하는 그림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말하자면 악어와 악어새 관계다.”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서울시의회에서도 일했던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은 “법적으로 규정된 삼권분립이 형식적으로나마 적용되는 곳은 중앙정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방의회 의원들에게 조례 제·개정권이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법률적으로 지방의회는 지자체의 한 부서처럼 돼 있다. 물론 최근 지방자치제법이 개정되면서 일부 바뀌었지만 심지어 의회 인사권, 예컨대 사무처장 임명권도 지자체장에게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의회 인사권 일부가 의회로 넘어갔지만 돈, 예컨대 예산편성권은 여전히 지자체장에게 있고 의회는 승인만 할 수 있다.

의회가 안 된다면 풀뿌리시민단체라도 감시해야 할 사항 아닐까.

“쉽지 않다. 시민단체 활동이 왕성할 때인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 때도 안 되던 일이다. 시민단체도 활동은 중앙 위주였다. 그나마 서울이나 수도권은 어느 정도 기반이 있으니까 또 모르지만 문제는 지역이 소멸하는 상황이라는 거다. 지역균형발전 명목으로 인구는 줄어드는데 예산만 쓴다. 일찍부터 지방소멸을 겪은 일본의 경우 광역으로 사람을 모으고 나머지는 버리는 전략을 썼는데 우리도 예산과 정치시스템을 인구재편에 맞춰 정치제도를 바꾸는 식으로 대폭 손질해야 한다.”

결국 지방자치단체의 제왕적 권력 견제는 요원하고 감시는 공염불에 불과한 걸까.

지역분권지방자치운동을 벌이는 이형용 거버넌스센터 이사장은 “물론 자치분권과 거버넌스를 지향하고 있다고 해서 지방권력이 하루 이틀 사이에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말하는 지역분권은 중앙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하지만, 지역에서도 행정에 집중된 권한을 나누자는 지역 내 분권을 의미한다”며 “중앙이나 지방이나 하나의 동등한 정부로서 파트너십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중앙과 지방의 일방적 권력 관계도 차츰 개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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