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요리사가 재기했다, 푸드트럭 대박 샌드위치로

[아무튼, 주말] [이용재의 필름위의 만찬] 쿠바노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 등장하는 쿠바식 샌드위치./오픈 로드 필름스

‘요리사들의 우두머리(치프·chief)’라는 의미인 셰프(chef)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레스토랑을 소유 및 경영까지 하면서 요리하는 부류로 흔히 ‘오너 셰프(owner chef)’라 일컫는다. 다른 하나는 사업주에게 고용되어 주방을 총괄하는 부류로 ‘총괄 셰프(Executive Chef)’라 부른다. 각기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 가운데, 아무래도 후자는 요리에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재정 권한이 자신에게 없는 탓이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주인공 칼(존 파브로)은 후자, 즉 월급 셰프이다 보니 사업주인 리바(더스틴 호프먼)와 자주 충돌한다. 자신의 요리를 레스토랑에서 더 펼치고 싶지만 “지금껏 잘되고 있는 걸 왜 바꾸느냐”며 번번이 제지당한다. 아무래도 돈줄을 쥐고 있는 사람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 시간이 흐르며 쌓인 좌절이 슬슬 분노로 바뀌기 시작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칼은 개인사도 잘 풀리지 않는다. 이혼해 아들 퍼시를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만나는데, 그마저도 레스토랑 때문에 바쁘다며 성심성의껏 응대해주지 못한다.

원치 않는 음식을 식탁에 올려 놓는 재미없는 나날들 속에서 사건이 터진다. 유명 온라인 음식평론가가 레스토랑에 찾아오기로 한 것이다. 칼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노라 그야말로 칼을 갈고 회심의 메뉴를 준비하지만, 다시 한번 사업주 리바에게 막히고 만다. 결국 그는 맛은 있지만 창의적이지 않은, 닳고 닳은 요리를 내놓고 평론가로부터 인신공격에 가까운 혹평을 받는다. 그런 가운데 레스토랑의 혹평이 퍼져나가는 트위터의 존재를 알게 되고, 막 가입해 사용법을 모르는 가운데 평론가에게 공개적으로 욕설을 보내고 만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파급력을 몰고 오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칼은 그 후 일파만파로 들이닥치는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한다. 인터넷 세계에선 웃음거리가 되고, 레스토랑마저 홧김에 그만둬 버린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칼에게 전처 이네즈(소피아 베르가라)가 친정인 마이애미 여행을 권하고, 그는 그곳에서 지역 별미인 쿠바식 샌드위치 ‘쿠바노(cubano)’를 재발견한다.

칼은 이네즈의 전전 남편인 마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받은 푸드트럭을 개·보수해 쿠바노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다. 요리 솜씨만큼은 최고였던 칼은 샌드위치가 잘 팔리자 아들 및 심복 요리사 마틴(존 레귀자모)과 함께 집인 로스앤젤레스까지 약 4400㎞에 이르는 자아 찾기 여정을 떠난다.

이름은 ‘쿠바식 샌드위치’건만, 쿠바노는 영화에서 보여주듯 쿠바가 아닌 마이애미나 탬파 같은 미국 플로리다주 남부 지역 도시들의 명물이다. 많은 음식이 그렇듯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쿠바와 미국 특히 플로리다의 왕래가 자유로웠던 1860년대부터 존재했으리라 보고 있다. 쿠바의 설탕 및 담배 사업이 활황기였던 시절의 문화가 미국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고 그 탓에 도시들끼리 정통성을 놓고 옥신각신하지만, 쿠바노의 구성은 비교적 간단하다. 햄과 모호(mojo·오렌지즙, 마늘 등으로 만든 양념)에 재워 구운 돼지 목살, 쌉쌀한 스위스 치즈 등을 머스터드를 바른, 길쭉한 쿠바식 빵 사이에 끼워 넣는다. 그리고 이탈리아식 샌드위치 파니니처럼 ‘플란차(flancha)’라 불리는 샌드위치 프레스 사이에 넣고 눌러 빵은 바삭하게 굽고 치즈는 부드럽게 녹여 완성시킨다.

칼의 자아 찾기 여정은 성공을 거둔다. SNS를 잘 다루는 아들 덕분에 푸드트럭은 멈추는 곳마다 인기를 끌고,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해서는 음식평론가와 화해하고 그의 투자를 받아 자신의 요리 세계를 자유롭게 펼칠 레스토랑을 개업한다.

서울에서는 연남동의 ‘탬파’(070-8156-0930)에서 쿠바노를 먹을 수 있다. ‘탬파 쿠반 샌드위치’가 1만3000원. 집에서는 머스터드를 바른 두 장의 식빵에 스위스 햄과 치즈만 끼워 프라이팬에 구워도 비슷한 느낌으로 먹을 수 있다. 샌드위치를 알루미늄 포일로 덮고 무거운 냄비 등으로 눌러 바삭하게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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