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윤석열 정부, 한반도 ‘공포의 균형’ 맞춰야”[플라자 프로젝트⑭]

[경향신문]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분열과 대립의 시대다. 국내적으로 윤석열 당선인이 문재인 대통령과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역시 악화됐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하며 스스로 설정한 도발 유예를 파기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와 이에 반대하는 세력 간의 경계를 빠르게 구분짓고 있다. 집권 세력에 따라 외교정책이 극명하게 변하는 한국은 대내, 대외적 전환기를 동시에 맞았다.

그동안 한국의 외교정책은 새롭고 창의적인 전환과는 거리가 멀었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영국의 엘리트는 새 병에 낡은 상표를 붙이는 취향이 있다”고 말했다. ‘변화된 상황에서도 낡은 제도를 계속 고집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국제정세는 다변화하고 있지만 외교정책의 틀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이냐, 대립이냐’는 식의 극단적 양자택일 수준에 머물렀다.

실제로 지난 5년 동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전력 질주했던 한국은 앞으로 5년 동안 반대 방향으로 질주할 태세다. 이는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10년 동안 질주했던 길이다. 사람도 정책도 과거와 같은데 “우리는 다르다”고 하는 것은 신화적 믿음이다. 해당 방향으로의 질주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에 우려는 더욱 커진다.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과거와는 다른 창의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6개월 동안 ‘플라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외교안보, 경제, 군사 분야 전문가들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논의했다. 총 15명의 각기 다른 분야 전문가들은 다음 정부를 이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담에 참석했다. 이로 인해 사안에 대한 다양한 진단과 이념적 한계를 초월한 대안 제시가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었다.

플라자 프로젝트 대담은 대선과 함께 마무리됐다. 이제는 윤석열 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첫 대담에 참석했던 김흥규 아주대 교수를 지난 3월 29일 다시 만났다. 김 교수에게 윤석열 정부가 직면할 대외 환경, 인수위 구성을 통해 예측해볼 수 있는 정책방향, 조언 등을 물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3월 29일 외부 일정을 마치고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감원 연수원에 마련된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집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 당선인의 후보 시절 발언과 달리 인수위는 ‘윤석열 정부는 대북 강경정책이 아니다’고 밝혔다. 어떻게 봐야 하나.

“국제정세에 대한 당선인의 언급, 상황인식과 인수위가 내놓는 정제된 논리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고 있다. 인수위의 공식적 입장과 별개로 당선인의 귀와 입을 붙잡고 있는 보다 보수적이고, 국제정세를 극단적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또 선거과정에서는 당파적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강한 주장을 했다면 당선인이 된 후에는 현실에 기반을 둔 정책을 준비하면서 괴리가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

-인수위 외교안보분과 인선을 두고는 이명박(MB) 정부의 계승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인수위의 생각을 좌우하는 인물들이 MB 정부 시절 인물들로 채워졌다. 상황에 대한 인식은 약간씩 달라졌겠지만 거의 비슷한 사고와 정책적 대안을 가지고 나온 것이 사실이다. 이들의 조언을 받는 윤 당선인이 내놓는 언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MB 정부 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주도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 역량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옛날과 같은 상황인식에 머물러 있다면 향후 5년은 남북 간의 극한 대립, 군사적 충돌, 한중 간의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인수위 외교안보분과 간사를 맡은 김성한 고려대 교수를 지난해 12월 만났다. 당시 김 교수는 윤석열 후보의 정책은 MB 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 다르다고 선을 그은 바 있는데.

“비핵개방 3000은 한반도의 충돌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으로 귀결됐다. MB 정부 관계자들은 우리가 선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북한이 도발해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문제는 현재 상황도 그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북한이 태도를 변화하면 단계적 보상을 하겠다는 것인데 결국 남북관계가 갈등과 충돌로 갈 확률이 높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 지금 국제정세는 ‘핵 사용’도 가능한 위험단계로 치닫고 있다. 국제정치에 있었던 묵계가 깨져나가는 상황에서 북한은 핵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대책없이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정책을 선택하는 게 우려스러운 건 이 때문이다. 동맹과 안보의 지나친 강조가 오히려 안보를 취약하게 하고, 동맹조차 흔들리게 하지 않을지 경계해야 한다.”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인 화성-17형 시험발사를 단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3월 25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실제로 북한은 ICBM 시험발사를 재개하는 등 도발을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북한의 태도 변화라는 전제는 비현실적인 것 아닌가.

“북한은 경험적으로 어떤 강대국도 믿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미중 전략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북한이 중국에 편승하는 전략을 선택할 거로 전망했는데 북한은 ‘자강’을 택하고 있다. 강대국 간 첨예한 갈등과 충돌이 있을수록 핵무장, 미사일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도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미국의 국내정치적 향배가 변수가 되고 있다. 민주당 정부가 계속 유지될지, 다시 트럼프 2.0이 나타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모두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 가시화될 것이다. 이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인수위는 현실에 기반해 차기 정부 정책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정책 방침이 이른바, ‘ABM(Anything But Moon·문재인 정부 정책 뒤집기)’으로 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한국이 강국 반열에 올라섰다고 평가받는 상황에서 외교정책이 정권에 따라 지나치게 흔들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 외교는 5년마다 가볍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변화를 시도해왔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는데 이는 큰 비용을 초래하고 국제적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윤석열 정부는 지나치게 급속한 변화를 시도하기보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와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것이 안정성 측면에서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선 한미동맹을 중시하고, 중국과의 관계도 잘 관리한다는 원칙을 계승해야 한다. 또 대북정책은 관리와 협력의 기조를 계승하겠다고 밝히는 게 추후 야기될 수 있는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했을 때 부담은 오히려 북한이 지게 된다. 약속을 어기거나 도발하는 경우 책임이 북한에 있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 진영의 언어를 보면, 관행적인 당파성을 더 강조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왜 이렇게 전임 정부 정책 뒤집기에 집착하는 것인가.

“문재인 정부도 그렇고, 이전 정부들도 다 그렇게 해왔다. 당파성과 편협성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선이 박빙이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국민이 다음 정부에 독주하지 말라고 경고를 한 셈이다. 기본적으로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대통령이 지지 그룹에 대한 정책적 보상을 넘어선 리더십을 발휘했으면 한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과도하게 집착해 문제를 야기했다면, 이번 정부는 과도하게 대결에 집착해 문제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이탈리아 로마 누볼라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인수위에 참여하지 않았나. 그때는 어떤 조언을 했나.

“당시 미중 전략경쟁의 파고가 점점 거세질 것이고 그 이슈가 남북문제도 덮을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 핵무장 강화를 추진할 것이고 한국에 실질적 위협이 될 테니 군사적 대응책을 잘 준비하자고 했다. 진보 정부가 북핵 대비책을 만든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 정책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지금도 당시 분석이 맞다고 생각한다. 미중 전략경쟁, 북한 핵무장이라는 일련의 흐름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됐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막판에 와서야 군사 역량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시 새롭게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과거의 편견과 프레임 속에서 중요한 시기를 놓친 거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는 정반대의 편견과 프레임을 갖고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북한과 협상을 하더라도 비판을 완화하기 위한 정도일 뿐 결국 실질적 대안은 한미동맹 강화에만 맞춰질 거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드러난 미국의 행태를 볼 때 과연 한미동맹이 과거와 같을지 모르겠다.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이 원하는 한미동맹의 모습은 현재 미국이 직면한 전략적 한계와 조정과정을 완벽히 반영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안은 뭐라고 생각하나.

“국가 간 대결 국면이 완화되는 구조는 서로 간 군사적 안정성이 확보되는 상황이다. 한반도는 서로 다른 체제와 이념을 기반으로 한 정치집단이 경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양자 간 신뢰에 기반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오히려 상호 군사적 안정성에 대한 확신이 평화를 위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당장은 불안하고, 더 먼 길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가장 지름길이다. 한반도는 군비경쟁을 해야 군축이 이뤄지는 딜레마 상황에 놓여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군사적 안정성 확보가 시급하다. 단순히 한미동맹에만 의존하는 건 취약한 고리다. 한국이 미국의 흥망성쇠에 종속된다. 강대국이 상대적 약소국의 이익을 자신들의 핵심이익과 결부시킬 거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 오히려 약소국은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건 미국 도움 없이도 북한의 핵미사일에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는 역량 구축이다. 차기 정부 5년에는 반드시 이를 확보해야 한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항모나 핵잠수함 정도로는 어렵다.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아이언돔이나 사드 추가 배치 등도 답은 아니다. 특히 미국으로부터 구입한 사드를 한국이 자체적으로 운영하기는 어려울 거다. 사드가 추가 배치되더라도 북한이나 중국이 미국을 향해 쏘는 미사일을 탐지하는 파수꾼 역할 정도에 그칠 것이다. 그보다 핵심은 응징적 보복을 통한 억제 역량을 갖추는 일이다. 현대 무기체계 구조로 봤을 때 방어체계만으로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어렵다. 우리가 핵을 갖기 어려운 상황에서 북핵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결국 미사일 전력 확보가 중요하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핵 능력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이를 대량 응징보복 체계와 연동시키면 상대방에 똑같은 공포를 심어줄 수 있다. 한국과 북한이 ‘공포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협상해 미사일 사거리, 탄두 중량 제한을 해제했다. 윤 당선인이 결심한다면 대북억제 전력을 가동할 핵심 조건들은 갖춘 셈이다. 이를 너무 선전할 필요도 없고 조용히 역량을 확충시켜 나가면 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한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모습. 뉴스1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가 정책을 주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는 다를 거라고 보나.

“아직까지는 열려 있다고 본다. 소수가 정책을 결정하지 말고, 정부 조직들의 역량과 전문성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체제로 가야 한다. 나아가 외교나 통일 쪽에서 나오는 다양한 의견들을 편견없이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가장 보수적 분위기가 팽배한 기관에 진보적 기관장을 임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정부의 정책적 대안과 운영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여러 대안을 모아 논의한 뒤 가장 합리적 정책을 선택하면 되기 때문에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 사실 국가의 생존이 걸려 있는 외교안보 사안을 합리성보다 당파적 견해에 입각해 결정한다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대선을 앞두고 6개월여간 진행한 플라자 프로젝트가 14회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보나.

“한국은 전문가들조차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나뉘어져 소통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각자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하는 식이다. 외교, 국방, 통일, 경제, 과학 등 분야마다 칸막이도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라자 프로젝트는 이념, 전문분야와 관계없이 사안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논의하는 장이 됐다. 지금과 같은 미중 전략경쟁 시기는 모든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함께 고민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 분야별 벽을 허물고 함께 고민하는 시스템이 필수라는 점에서 플라자 프로젝트는 의미가 있다.”

-외교안보 싱크탱크 문제는 어떤가. 한국은 정파적 관계를 초월해 국가전략을 세우는 기구가 부족한 편이다.

“한국은 외교안보 싱크탱크가 자리 잡기 어려운 환경이다. 점점 더 당파적이고 편협한 소수 집단이 정책 결정을 독점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싱크탱크나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 싱크탱크를 운영하면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실질적 조치뿐만 아니라 이를 권장하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도 사실상 부재하다. 이는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미중 전략경쟁 상황이 심화하면서 국가의 외교 행보에 따라 기업의 존망이 결정되는 게 현실이다. 기업들이 미국처럼 외교안보 전문가들과 싱크탱크를 지원해야 하는데 이러한 부분도 부족하다.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연구하고 당파를 초월해 정책을 세울 수 있는 환경부터 시급히 조성해 나가야 한다.”

-플라자 프로젝트의 마지막 질문이다. 윤석열 정부에 조언한다면.

“하나를 꼽으라면 보수와 진보를 가르지 말아야 한다. 윤 당선인은 말하기보다 경청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 아무리 강대국의 위협이 있어도 국민이 분열하지 않고, 똘똘 뭉쳐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 이를 어기고 국민을 가르고 당파적으로 접근하면, 반드시 위기를 겪게 된다. 우리가 지금 그런 국제정세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시리즈끝>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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